<현장신학> 문답교실 업데이트

[문답교실1 – 11조, 꼭 해야 하나요?] – 친애하는 목회자 한분이 질문 보따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문답교실2 – 주일성수 필수? 온라인예배는 인정?] – 기독교자의 삶의 질을 염려하는가? 예배당 예배는 필수 아닐 수 있다. 코로나19가 이미 가르쳐 주었다.

[문답교실3 – 포스트코로나 시대, 목회자의 책무] – 우리보다 2천년 앞서간 이들이 있답니다, 목회자 여러분.

[문답교실4 – 하나님 믿는데 왜 자꾸 고난을?] – 싯달타의 질문이지요. 인생은 고해다. 어찌 이 바다를 무사히 건널꼬? 집착을 버려라. 아니면, 굿? 아니면, 회개? 그 어느것도 우리의 아픔을 위로해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질문을 바꿉니다.

[문답교실5 – 예수는 무슨 복을 주나요?] – 사람이 신이 된다. 자주 있는 일이다. 근거가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 근거가 공유할 수 있으면 좋다. 다음 질문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인데, 우선 삶부터 이야기하려 합니다.

[문답교실6 – 예수 부활, 일상언어로 번역이 필요한 말] – 예수 사건은 무덤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기성교회 목회자, 신학자는 속뜻을 알려고도 설명하려고도 하지 말아요. 파문당합니다. 예습 강의1.

[문답교실7 – 예수부2, 신천지에 없는 바다] – 예수 사건은 무덤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기성교회 목회자, 신학자는 속뜻을 알려고도 또 제대로 설명하려고도 하지 말아요. 파문당합니다. 예습 강의2.

[문답교실8 – 예수부활3, 십자가 스캔들 넘어가기] – 진지한 신앙인이 묻고, 신학전문가요 목회자 심정을 아는 이가 답합니다. 질문은 대환영입니다. 예습강의3.

[문답교실9 – 예수부활4, 언어 공부가 급선무] – 제자들이 예수의 부활을 믿었다? 성경은 달리 말하고 있다. 신약성서학자들은 원자료가 아니라는 핑계로 대충 넘어가는 이야기들, 저는 진지하게 다룹니다. 우리 앞에 있는 신약성경이기 때문입니다.

[문답교실10 – 예수부활5, 바울 사도의 요상한 간증] – 예수 부활은 카메라로 찍을 수 있는 성질 사건이 아니다. 하나님의 계시 사건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처음에 알아보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 비밀을 무시하면 신앙은 빗나간다, 아주 크게. 성경은 달리 말하고 있다. 다음 강의는 바울 사도의 고린도전서 15장, 부활장 이야기 차례입니다.

[문답교실11 – 예수부활6, 바울의 포인트, 너희는 예수를 모른다] – 예수 부활은 카메라로 찍을 수 있는 성질 사건이 아니라 한다. 그것은 계시 사건이다. 육으로 만난 예수보다 계시로 만난 예수가 더 진짜이다.

[문답교실12 – 예수부활7A, 여러 모양의 예수, 부활 신앙 앞에서의 판단 기준] – 예수 부활은 카메라로 찍을 수 있는 성질, 사건이 아니다. 이 점은 복음서들과 바울이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예수님 자신의 부활 신앙을 공부하면서, 성서 안에 서로 다른 다양한 부활 신앙이 있으며, 예수를 보는 여러 시각도 존재한다는 점을 충분히 생각해 보시라고, 하나의 강의 영상을 전반과 후반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문답교실13 – 예수부활7B, 예수 자신의 말되는 부활신앙] – 예수는 아브라함, 이삭, 야고보가 부활하여,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살고 있다는 이상한 논증을 폈다. 학자들은 이 대목의 진정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저는 말되는 예수의 말되는 부활신앙에 매료됩니다. 예수처럼 믿으면 이단이 되는 세상, 교회의 가르침과 예수의 가르침이 다르다면, 어느게 정답인가? 기독교라는 이름의 영토 안에서는 … 예수 부활은 카메라로 찍을 수 있는 성질 사건이 아닙니다. 질문을 환영합니다. 말되는 이야기로 답하려고 노력합니다.

[문답교실14 – 예수부활8, 마감. 학자들이 읽지 않는 마가의 결론] – 너무 쉬운 이야기, 그래서 도망하고 싶은 이야기. 그러나 불멸의 복음이라네요. 마가 6장 21-22절 말씀이 저희 고백임다.

[문답교실15 – 예수복 2, 기독교가 약속한 두 가지 복은 답이 아니지만] – 엄마, 아빠가 자녀 걱정
하면서 묻는 질문이다. 예수는 무슨 복을 준다는 말인가? 죄 용서와 영생? 성공의 지름길? 그건 답이 아닌 줄 이미 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청년들, 자본주의 경쟁사회의 압박 속에서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과연 무엇을 줄 수 있단 말인가? 이 번 강의는 그 출발점 입니다. 다음 강의를 기대해 주세요. 이 영상 강의를 통해, 함께 신학을 만들고자 합니다. 하나는 배우고, 하나는 가르치고, 그런 게임이 아닙니다. 구독자, 청강자들의 협력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에 접어듭니다. 

[문답교실16 – 예수복 3, 오늘 청년 행복 위해 주는 예수의 도움말 두 가지] – 답이 없다가 답이다. 답은 청년 각자가 작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싯다르타가 남겨준 충고 하나, 그리고 예수가 남기신 지혜 두 가지를 진심으로 전달하고 싶다.

[문답교실17 – 날마다 내가 질 십자가, 그 안에 가정폭력도 포함되나] – 고난이 사람을 거룩하게 만든다. 가정과 성생활의 금욕 또한 성직자를 거룩하게 만든다. 이것은 가톨릭의 전통 신앙. 그러나 가톨릭과는 달리, 개신교는 가정과 성을 적극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니 가정폭력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단 내가 즐겁게 선택한 명분 있는 아픔이라면 모를까? 우리들은 내가 날마다 져야 할 십자가를 잘 못 가르치고 있다. 질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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